대구시 중구 교동 ‘만리장성’의 김재만 대표가 ‘2천원 짜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짜장면 한 그릇 평균 가격이 6천원을 넘어섰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8%로 13년 만에 가장 높다고 한다.

삼계탕은 이미 2만원을 넘어섰고, 김밥도 2,908원으로 한 줄에 3천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3인 가족이 외식 한번 하려면 10만원으로 빠듯하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10년째 짜장면을 2천원에 파는 곳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대구시 중구 교동 ‘만리장성’의 김재만(63) 대표다.

‘미끼 상품’이겠지 생각하다가는 금방 뒤통수를 맞게 된다. 짬뽕이 3천500원인데다 탕수육도 7천원(미니) 밖에 안하기 때문이다.

‘이러고도 남는 게 있나’ 질문을 던지자 ‘우리 부부가 지출(인건비) 줄이고 덜 남기면 겨우 수지(收支)를 맞출 정도가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선(善)한 이웃의 적선(積善) 쯤으로 치부해도 좋겠지만 현실에서 겪는 부부의 고통은 미담 차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미 김 대표 부부는 무릎 연골이 닳아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할 정도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집 짜장면이 최고’라고 외쳐주는 단골들이 있어 부부는 오늘도 힘차게 셔터 문을 올린다.

◆18세 때 호구지책으로 중국집 종업원 시작=김 대표가 처음으로 주방 요리 칼을 잡은 건 18세.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에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위해서였다.

“당시엔 월급 개념도 없었어요. 먹여주고 재워주면 기술 배우는 걸로 월급을 퉁 치던 시절이었어요. 또 주방장 군기가 세서 수시로 구타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다반사였죠.”

간이 조금만 안 맞아도, 배달이 조금만 늦어도 주먹이 날아왔지만 그래도 빨리 기술을 배워서 독립한다는 희망 하나로 버텨내던 시절이었다.

김 대표의 첫 근무지는 대구시 동구 방촌의 한 중국집이었다. 1970년대 방촌은 거대한 저탄(貯炭)창고였다. 당시 대성연탄, 한일시멘트, 대동레미콘이 반야월을 근거로 호황을 누렸고 거리엔 종업원, 거래처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당시 점심시간만 되면 식당마다 시커먼 얼굴을 한 근로자들이 수십 명씩 몰려들었어요. 힘든 육체노동에 얼마나 배가 고팠겠어요. 대부분 곱빼기를 시켜서 급하게 먹곤 다시 일터로 나가곤 했죠.”

도로도 검고 얼굴도 검고 음식(짜장면)도 검었으니 온통 ‘블랙 톤’이었지만 내가 조리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대상이 있어 이 시절이 가장 행복했고 보람도 컸다고 한다.

방촌에서 기술을 익힌 김 대표는 그 후 시내로 진출해 동성반점 등 큰 중국집에서 주방장으로 활약했다.

◆교동시장 근처에 중국집 오픈 천원 짜장‘ 시작=주방에서 요리 칼을 잡은 지 약 20년 만에 김 대표는 드디어 독립의 꿈을 이루었다. 2000년대 초 김 대표는 교동시장 옛 중앙극장 옆에 ‘풍락반점’을 내고 영업을 시작했다.

20년 만에 꿈에 그리던 ‘내 가게’를 갖게 된 김 대표였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돈 좀 벌어보자’는 욕심보다 불우한 이웃의 주머니 걱정을 먼저 했다. 이래서 김 대표의 첫 영업 전략은 ‘천원 짜장’이었다.

당시에도 시내 짜장면 값은 2500~3000원대여서 1천원은 턱없이 낮은 가격이었지만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점심시간이면 매일 가게 앞에 긴 줄이 설 정도였다.  

김 대표는 착한 가격으로 시민들의 배를 든든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한편으로 불우노인, 소년소녀 가장, 결식아동 돕기에도 앞장섰다. 또 중구청, 중부경찰서의 여러 치안·방범 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지역사회봉사에도 힘을 기울였다.

지금도 가게 한켠에는 당시 여러 기관으로부터 받았던 시민경찰학교, 자율방범대, 노인복지 후원 공로·표창장이 걸려 있다.

여러 봉사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요셉의 집’에서 펼쳤던 ‘짜장면 1000그릇 무료 급식’이었다.

“그 당시에도 노숙자와 끼니를 걱정하는 어르신들이 많았습니다. 직원, 가족, 친척들이 모두 나서 짜장면을 대접해보자고 나섰습니다. 그때 들어간 밀가루가 20포대가 넘었고 양파·감자·돼지고기 등 부식재료가 한 트럭은 들어간 것 같아요. 전날부터 밤새 밀가루 반죽을 하고 다음날 하루 종일 짜장면 급식을 했는데 대략 1000그릇은 뽑았던 것 같아요.”

이 일로 지역 사회에 화제도 되었고 표창도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런 행사가 정기화, 연례화에 이르지 못하고 일회성에 그친 것을 아쉽게 여기고 있다.

만리장성 ‘2천원 짜장’

◆“불우이웃 챙겨야죠” 지금도 짜장면 2천원=10년 전 김 대표는 교동 대로변에서 현재의 자리로 점포(만리장성)를 옮겼다. 근래 들어 교동 전자상가 상권이 많이 위축되었고 유동 인구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고객과 봉사를 제1 순위로 생각하는 김 대표의 봉사 DNA는 이곳에 와서도 어김없이 발현되고 있다. 여기서도 짜장면 염가 봉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 물가와 식재료값 상승 등 현실을 고려해 인상(2천원)한 점만 다르다.

김 대표의 점포 이전 소식을 듣고 수십 년 단골들도 그대로 따라 왔음은 물론이다. 단골들은 식기 반납 같은 홀 서빙을 자진해서 하며 김 대표 부부를 돕고 있다.

식당에서 만난 한 손님은 “요즘 같은 불황에 2천원으로 한 끼를 떼울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며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여기를 찾아 식사도 하고 안부도 묻는다”고 말한다.

고객들의 처지와 사회적 약자들을 챙기다 보니 정작 놓친 것들도 있다. 바로 부부의 무릎 건강이다.

부인 차순덕 씨는 “젊은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배달을 하다 보니 무릎 연골이 내려앉아 인공관절수술 권유를 받았다”며 “그래도 우리의 고충을 알아주는 단골들이 있어 이를 훈장처럼 여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나저나 김 대표의 ‘착한 가격 행진’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건강이 허락되는 만큼 이 점포를 계속 꾸려갈 계획인데 무릎 말고는 건강, 체력이 아직 건재하기 때문이다.

“반죽 밀어서 4남매 교육시키고, 짜장 끓여서 결혼까지 다 시켰는데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아직은 우리 부부 건강이 유지되고 있으니 거창한 나랏 일은 못해도 내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의 식사는 계속 챙길 생각입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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