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리시장은 평리1~4동 2만여가구 단독주택지와 평리 푸르지오 1,819세대 아파트를 배후 상권으로 두고 있다. 한상갑 기자

현대사에서 대구시 서구처럼 경제적으로 부침(浮沈)을 거듭한 곳도 드물다.

1970~80년대 서구는 당시 대구의 주력산업이었던 섬유, 염색단지가 밀집한 대구 경제의 핵심지역 이었다. 당시 서구에 들어서면 염색산단, 제3공단, 서대구산단에서 들리는 기계 소리가 지축을 울렸고, 이 산업시설을 따라 돈과 사람이 몰려들었다.

대구의 성장 동력이자 경제의 중심이었던 서구는 1990년대 이후 주력 업종들이 쇠퇴하면서 구세(區勢)도 현저히 약화 되었다.

1980년대 후반 인구 57만을 기록했던 서구는 인근 달서구에 동(洞) 일부를 떼어주고, 관련 산업들이 사양길에 들어서며 1988년 20만 명마저 붕괴되고 현재는 16만 명으로 인구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신평리시장’이 위치한 평리동은 전성기 시절 서구의 영화를 간직한 곳이다.

평리동이 대구 서부의 중심?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곳에 서구청, 서부경찰서, 서부도서관 등 서구를 대표하는 관공서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 빨리 이해가 갈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평리동은 유서가 깊은 곳이다. 우선 ‘평리’(坪里)란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평야가 잘 발달한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 평리동은 대구부 서중면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들이 잘 발달되었다고 해서 ‘들말평야’로 불렸다고 한다.

동의 인근에 ‘서울나들이’를 뜻하는 ‘살나들’ 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 역시 평리동 일대가 곡창지대를 배경으로 서울과 통하는 요지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80년대 평리1~4동 주택가 생필품 공급처=신평리시장이 들어선 건 1980년. 이때만 해도 서구는 대구시에서 두 개 선거구(서구 갑, 을)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초반 대구 평리동은 1~4동이 모두 주택가가 들어섰고, 신평리시장은 바로 이 주택가 생필품 조달처의 필요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당시 평리동엔 신평리, 구평리시장이 성업 중이었다. 구평리시장은 평리 1·3동을 배경으로 북쪽에 상권을 형성했고, 신평리시장은 남쪽 평리 2·4동을 배경으로 상권을 장악했다. 이 두 시장은 서구청 일대 상권을 양분 하며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시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1990년대 조기축구를 할 때 뒷풀이를 위해 자주 들렀다”며 “그때만 해도 200여m 장터거리는 인파로 붐벼 장터 분위기가 났다”고 회상했다.

얼기설기 천막에 비만 오면 질척이는 신평리시장은 2012년 대대적 공사를 통해 현대 쇼핑시설로 거듭났다.

당시 서구청은 총사업비 30억을 투입해 아케이드 지붕을 설치하고 소방, 전기, 방송통신, 바닥포장, 간판, 상수도시설을 정비했다 .

이런 전통시장 정비는 마침 시장 옆에 들어선 평리푸르지오 건축과 함께 진행돼 도심 주거 정비와 시장 현대화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었다 .

신평리시장은 주택가 노년인구와 아파트 젊은 세대들이 한 장터에서 공존하는 구조로 주목을 끌고 있다.

◆어르신, 새댁들 수요 맞춰 점포 아이템 구축=보통 시장 규모와 점포 아이템은 시장을 둘러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신평리시장의 상권과 구조는 흥미롭다. 바로 시장 주변의 환경 때문이다.

신평리시장은 단독 주택과 아파트(평리푸르지오)가 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이런 ‘분류’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아파트에는 신혼·젊은층들이 많이 거주하고 단독주택에는 고령층·노년 가구가 주로 입주해 있다. 신평리시장의 상권과 점포 분포는 이 구도에 충실히 부합하고 있다.

젊은층, 주부들을 위해 식료품, 생선, 부식, 야채·과일, 분식집들이 밀집돼있고, 어르신들을 위한 방앗간, 참기름, 쌀·떡집도 들어서 있다.

“우리 시장은 좌파, 우파로 나뉘어요. 시장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은 주택가가 형성돼 있는데 여기서 어르신들이, 오른쪽 아파트(평리 푸르지오)에서는 새댁들이 주로 장을 보러와요. 좌파 어르신들은 떡집, 죽집, 건어물이나 잡화점을 주로 이용하고, 우파 주부들은 반찬, 아이들 간식이나 과일 등을 사가죠.”

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상가 분포에 대해 재미있는 해설을 들려주었다.

신평리시장이 내부. 방앗간, 기름집, 떡·죽집 등 ‘올드 계열’ 점포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도심 주거형 전통시장으로 입지 다져나갈 것=다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신평리시장 역시 2009년 홈플러스 내당점이 들어서며 큰 타격을 받았다.

“5~10분 거리에 대형마트가 들어서자 편리함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들이 모두 그쪽으로 몰렸어요. 매출이 30~50%씩 떨어졌습니다. 동네 상권까지 침범한 대기업 상술에 화가 났지만 세월 속에서 이젠 이 일마저 익숙해졌습니다.”

40년째 방앗간을 운영했다는 한 상인은 대형마트가 들어섰을 당시 충격을 이렇게 소회했다.

코로나-19사태 후 비대면 마케팅이 늘어나면서 시장에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든 것도 상인들을 우울하게 한다.

현재 신평리시장은 든든한 배후 상권(2만여 세대 단독주택과 1,819 세대 아파트)을 배경으로 도심 주거형 전통시장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우리 시장처럼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신세대와 구세대의 수요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시장이 드물 것” 이라며 “우리 상인회가 먼저 이분들의 수요를 분석하고 주민들의 실생활에 맞는 아이템과 서비스를 갖추어 주민과 함께하는 시장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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