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이발요금 8천을 실천한 현대이용소 이수길 대표. 한상갑 기자

채소, 과일, 식료품 등 밥상 물가가 급등하면서 엥겔계수가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유가가 폭등하면서 국내 물가도 28년 만에 5%를 넘어설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 착한 가격으로 서민들의 가게에 훈기를 불어넣는 점포들이 있다. 오늘 소개할 대구시 동인동 현대이용소 이수길 대표는 65년 동안 대구에서 가위를 잡은 지역 이용업계 산증인이다. 올해로 82세를 맞았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가위를 잡고 있다.

높은 연륜만큼 이 대표를 돋보이게 하는 미담이 있는데 바로 ‘1만원’으로 책정된 이발 요금이다. 서울의 유명 바버샵에서는 이발료가 10만 원을 넘어서고, 골목의 웬만한 이발소도 1만 5천~2만 원은 받는다.

머리는 깎고 요금은 낮추었다는 이 대표를 그의 이발소에서 만나 보았다.

◆1955년 이발 시작, 65년간 이용업 종사=이 대표가 처음 이발을 시작한 건 1955년 17세 무렵. 6·25 당시 아버지를 잃고 생활고를 겪을 때 친척의 권유로 가위를 잡으면서부터. 당시에는 직업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고 양복이나 목공, 건축처럼 기술만 익히면 겨우 밥을 먹던 시절이었다.

총명하고 손재주가 좋았던 어린 수길은 금방 이발 기술을 배웠다. 그가 점포를 낸 곳은 동인동 현대목욕탕 내에 있는 이발 코너. 옛날에는 웬만한 목욕탕에 이발소가 있었고 솜씨만 좋으면 목욕탕 손님들만 상대해도 어느 정도 생활이 될 때였다.

목욕탕에서 돈을 모은 이 대표는 1985년 동인동 현재 위치에 점포를 얻어 독립을 했다.

“꿈에 그리던 내 가게를 갖게 되면서 한동안은 설레는 마음에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매일 정성껏 의자며 바리깡을 닦고, 최선을 다해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이렇게 일군 그의 이발소는 올해로 37년을 맞았다. 처음 가위를 잡았던 1955년까지 소급 하면 총 65년의 이발 경력이 되는 셈이다.

현대이용소에 들어서면 1980년대 마을 이발소의 흔적과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우선 전신 거울과 함께 배치된 3개 의자는 이 집의 역사를 말해 준다. 의자들은 1985년 점포를 오픈할 때 들여 놓은 것들이니 약 40년 쯤 됐다. 면도칼을 숫돌에 갈아서 쓰던 시절 유품들도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요즘이야 다들 일회용 도루코 면도날을 쓰지만 옛날엔 면도칼을 직접 연마해 썼었다. 칼을 임시로 벼르던 가죽 피대(皮帶)도 남아 있다.

물건을 하나씩 꺼내 보이던 이 대표가 ‘진품명품급’ 이라며 양손 바리깡, 드라이어를 들고 왔다. 바리깡은 1950~60년대 제품으로 지금은 ‘퇴역’한 골동품급이다. 요즘이야 전기 커트기나 가위로 대부분 머리를 잘랐고, 2000년대 초반까지 만 해도 한 손으로 깎는 바리깡이 있었지만 이것처럼 양손으로 깍는 바리깡은 이제 골동품 가게에서 만 볼 수 있다.

바리깡과 함께 대표가 귀중하게 여기는 또 하나는 50년된 독일제 드라이어. 지금은 상호도 모두 지워져서 제조사도 알 수 없지만 온풍만큼은 아직도 빵빵해 이 대표의 일을 거들고 있다.

이발소를 방문한 이철우 경북지사. 현대이용소 제공

◆교회 이·미용선교단체서 20년 넘게 봉사활동=슬하에 3남매를 둔이 대표에게 이발소는 생업 수단이자 삶의 기쁨이었다. 이제 자녀들도 모두 장성해 가정을 이루었으니 이 보다 큰 보람이 없다. 옛날에는 돈과 생계가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손님을 만나 대화하는 것을 일상의 낙으로 삼고 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로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주민들 이발하는 횟수가 줄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가게 수입이 줄어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개인위생을 소홀히 할 정도로 삶이 궁핍 해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요즘은 머리가 길고 남루한 사람이 많아요. 이분들이 제 가위를 거쳐 말끔한 모습으로 나갈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생계수단이었던 이 대표의 가위는 2001년도 한 ‘사건’을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바로 이 대표가 출석하고 있는 대구동신교회에서 ‘이미용선교회’가 결성되면서 부터다.

이 단체는 이·미용을 업으로 삼고 있는 교회 신도들이 만든 단체로 한센병환자, 다문화가족, 외국인 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매주 봉사 활동을 펼쳐왔다.

‘내가 큰 도움이 될까’ 하고 시작한 활동은 올해로 21년을 맞았다. 1~2만 원이 아쉬운 분들에게 경제 부담을 덜어 드리고 이 분들의 위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고 말한다.

현대이용소 내부 모습.

◆2011년 대구시 ‘착한 가게’ 선정 10년간 8천원 요금=대구시가 펼치고 있는 ‘착한 가게’에 이름을 올린 것도 이 대표의 사회공헌사업 중 하나이다. ‘착한 가게’ 는 대구시가 싼 값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를 선정해 선(善)한 영향력을 펼치는 제도,

이 대표는 2011년부터 착한가게 캠페인에 동참했다. 대구시 동인동 일대가 부촌도 아니고 지역 어르신들이 부담 없이 이발이라도 맘 편히 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이 대표는 1985년부터 이발료를 8,000원으로 정하고 30년 넘게 이 가격을 유지했다.

“치솟는 물가에 점포세도 올라 몇 번 인상을 검토했지만 이 내 마음을 접었어요. 저희 집 손님이 대부분 60~80대 들입니다. 어르신들 주머니 사정이 뻔한 데 이발이라도 부담없이 하게 해 드리자 이 가격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37년을 실천해온 요금은 2021년부터 1만원으로 올렸다. 코로나 19로 손님이 준데 다 물가가 올라 가게 운영이 더 이상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 요금을 너무 낮춘 탓에 주변 업소나 미용실 등에서 하소연을 해온 것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올해로 이 대표는 82세를 맞는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60대 중반이면 은퇴를 맞는 세상에서 이런 ‘장수’가 행복하기만 하다. 한편으로 평생을 이용업에 종사해온 이용인으로서 아쉬움도 남는다. 이발업을 이어갈 젊은 세대들이 없어 이발업이 당대에 끝나버릴 것 같은 아쉬움 때문이다.

“앞으로 건강이 유지되는 한 계속 가위를 잡을 생각입니다. 지금 컨디션으로는 90세까지는 끄떡없을 것 같습니다. 이 ‘1만 원 요금표’와 함께요.”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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