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한국문인협회칠곡 지부장) 시인 장진명

 [한 편의 詩]

- 눈  -                   장진명

눈은 너무 희어서 모든 것은 색을 잃었다

대합실도 없는 사곡역에서

우리는 무작정 낡은 우산으로

하늘을 받아 내렸고

홀린 듯 무언가를 따라나서는

굶거나 한 끼를 먹거나 새는 단단한 부리로

눈 속을 날았다

눈 내리는 날은 기차를 탄다

누군가를 따라 나서고 싶은 날이어서

기어이 죽여서 데리고 온

털 빠진 밍크를 목에 두른 누이와 기차를 탄다

삶은 너무 거칠었다고 부드러운 밍크에 얼굴을 묻고

나는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동물과 사람들은 그제야 친근하다

발톱을 감추고

세상은 새하얀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숙연하게 눈을 받아 내린다

굶은 새조차 홀린 듯 날아오르는

황홀한 절정

소름 돋듯 외로운 이름을 가진 눈이여

공평함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기차가 눈을 푹푹 퍼내고

죽은 짐승도 우두둑 허리를 펼 것 같은

긴 문장을 가진 오래 앓은 눈이여,

죽은 밍크를 두른

삶이 희미한 누이여.

박상희  jangk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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