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3시 대구 남구 이천동에 위치한 제1호 시니어 카페 ‘써니커피’.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매장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어서오세요, 써니커피입니다’고 인사했다. 갈색의 밀짚모자를 쓴 직원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웃는 미소에 잡힌 세월의 ‘주름살’과 모자 틈으로 보이는 흰머리는 단번에 ‘할머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커피 주문을 받는 모습에서부터 향기로운 커피를 만드는 모습까지 ‘프로 바리스타’였다.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태옥(70·여) 어르신은 카페 운영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만났다고 밝혔다.

이 씨는 “친구들이나 가족은 ‘늦은 나이에 왜 사서 고생을 하냐’ 하지만 노인정이나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배우고 일하는 게 얼마나 큰 낙이 되는지 모른다”며 “일도 재미있고 카페에서 비슷한 나이 또래의 친구도 만나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큰 기쁨이다”고 말했다.

‘써니커피(Sunny Coffe)’는 대구 시니어클럽의 노인일자리 특성화사업에 선정돼 지난해 9월 지어진 제1호 시니어 카페다. 이태옥 씨는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새 삶을 살고 있다.

▲ 바리스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태옥(70·여) 어르신은 카페 운영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만났다. 사진 김지은 기자

“평생 식당 운영하면서 자식을 키웠죠.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힘들어지니깐 자연스럽게 일을 접고 동네 노인정을 다니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노인정의 생활에서 만족을 하지 못했다. 그는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오래되다보니 삶이 지겹고 심심해졌다”며 “‘사회에서 이제는 나를 필요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더 우울해지고 낙이 없어지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우울한 삶을 보내고 있던 중, 뜻밖의 일이 생겼다. 남구청에서 항상 받아보던 월회지에 대구 시니어클럽의 노인일자리 특성화사업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이 씨는 “‘이렇게만 있지 말고 한번 배워보기라도 하자’라는 생각으로 교육생 지원을 신청한 것이 바리스타가 된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8주간의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늦은 나이에 커피를 내리고, 만들고 평생 들어본 적도 없었던 생소한 용어를 외우며 배우는 바리스타 교육이 벅찰 때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손에 익히고 나니 금방 기술이 늘었다.

“실기야 반복적으로 하면 몸에 익는다고 하지만 문제는 ‘머리’였죠. 엄청난 양의 이론을 외워야 하는 필기시험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필기시험 공부를 하면서 이 씨는 ‘이 나이에 왜 이러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바리스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마침내 이 씨는 필기와 실기시험을 모두 통과해 2급 바리스타 자격증을 받았다.

“그때 정말 두 번째 인생을 맞이하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이 씨는 처음 카페에서 근무했던 당시를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처음엔 주문이 많으면 겁을 먹고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즐기며 일한다”며 “특히 배울 때 가장 힘이 들었던 ‘스팀(거품)내기’가 이제는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이 됐다”고 말했다.

다른 카페에서 2년 정도 일하다 5개월 전 써니커피로 들어오게 된 이 어르신은 바리스타라는 새 직업으로 사는 것도 너무나 큰 행복이지만, 같은 또래의 친구들을 만난 게 가장 좋은 점이라고 밝혔다.

이 어르신은 “나이가 들수록 혼자가 되고 외로워진다”며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같은 고민을 나누고 함께 즐거움을 느끼면서 누구보다 소중해졌다”고 말했다. 이 어르신은 “이 친구들은 이제 나에게 자매 이상의 사람들이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 “가족들이나 친구들 중에서는 ‘평생 장사해놓고 왜 또 사서 고생을 하냐’하기도 하는데, 바리스타가 된 후로 집이나 노인정에 가만히 있을 때보다 훨씬 재밌는 삶을 만나게 됐습니다.”

시니어 카페인 써니커피에서 근무하면서 웃지 못 할 일들도 많았다. 흰머리가 희끗한 할머니가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을 생소하게 여긴 젊은이들이 커피를 마시러 오다가 도로 나가버리는 일도 있었던 것.

이 씨는 “처음에는 약간 어려워하기도 하고 기대도 안했던 젊은이들이 커피를 마시고는 ‘너무 맛있다’고 칭찬해 줄 때 정말 기뻤다”며 “그런 젊은이 중 몇 명은 이제 단골이 돼서 자주 찾아와 내가 만든 커피를 찾는다”고 말했다.

지금의 삶이 정말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 씨는 앞으로도 즐겁게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 중에서는 ‘평생 장사해놓고 왜 또 사서 고생을 하냐’하기도 하는데, 바리스타가 된 후로 집이나 노인정에 가만히 있을 때보다 훨씬 재밌는 삶을 만나게 됐습니다.”

김지은 기자  newsmall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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